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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2:57:04 조회 : 3625         
참 성도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참 성도

인간의 모든 활동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보는 방식들이다. 모든 의미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데 중심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가치가 있고 중요성이 나름대로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신에 관해서 라든지, 교회나 직장이나 가족에 관해서도 가치를 두는 이유는, 모두 '나'의 존재로부터 기어 나간 의미가 멀리까지 파생된 결과로 간주하고 싶어한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최종 진리 가치를 두게 되면 제 3자가 끼여들 틈이 없게 된다. 예수님이라 할지라도 그 분에서 중심점 내어 주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단 예수라는 분이 '나'라는 존재의 의미성을 인정해 줄 경우에만 예수 믿기를 고려해 볼 정도이다. 신학을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신학을 옹호하고 참된 신학만이 살길이라고 선포하지만 그 배후에는, '나'만이 옹호하고 '나'의 존재함만이 진리의 원천지인 것을 부르짖는 대리 개념에 불과하다. 진리 체제를 나름대로 구축해 보는 일도 모두 다 '나'라는 자기 자신에게 가치를 지속적으로 부여할 수 있는 관계 범위 내에서만 수긍이 된다. 소위 신앙이라고 불리는 종교 활동이라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끊임없이 자기 야망의 노예가 되어 신에게 달려드는 행위에 불과하다. 자기 완성을 위해 그들은 신의 이름을 부르고 교회를 만든다. 주님이 계시기에, 주님을 지향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자신의 영원한 의미성을 지향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존재함의 능력이 주위에까지 영향을 미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할 그 타당한 의미가 도출될 때, 인간은 최고의 희열을 갖는다. 즉 "내가 없이는 되는 일이 없어!" 그러나 실제로는 세상 모든 일이 주님 홀로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의미도 그 분에게만 있다. 이점은 인간들은 역겨워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수님에게 대해서 질투하고 시기한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라는 불순한 여운의 꼬리를 남긴다. 하나님 이름이 벌리시는 전쟁에서의 진정한 적들은, 자기 이름에 맹종하는 피조물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이름, 즉 자기 존재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고 사투를 벌리는 작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십자가는,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지탱해 주는 가짜 십자가이다. 이들이 신을 향해 올린다는 기도는 다음의 내용을 누락시킨 채 드리는 기도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자기 존재의 위태로움에 더 관심이 가 있고 자기 이름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들에게 있어 십자가의 근본 정신은 나약한 신의 아들의 패배의 자국으로 비칠 것이다. 그들은, 이런 나약한 신의 아들 상을 거부하고 도리어 위대한 종교 스타로 부각되기를 고대한다. 광야에 나타난 악마를 그들은 스스로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라이벌이 될 뿐이다. 예수님이 할 수 있는 것도 자기가 해 내므로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처럼 자신들의 존재들로 하늘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다. 이들은 의욕 상실을 제일 두려워한다. 따라서 의욕 상실을 저해되는 모든 요소를 강제로 자기 내부로부터 추방하려든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그들의 눈에 띄어 일단 머리 속에 들어갔다 나오게 되면, '나도 흉내낼 수 있는 일'로 바뀐다. 그래서 "나도 필요한 인물임"을 계시해 주는 근거로서 사용되어 버린다. 예수님은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고, 단지 "하면 된다!"는 신나치주의적 발상만 난무하는 해석이 튀어나온다. 자신만은 결코 멸망시키지 않는 하나님만을 염두에 두고 살고, 자신만이 결코 패배자로 만들지 않을 그런 예수만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처참한 십자가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그러나 참된 성도라면 이 죽음을 이렇게 이해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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