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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04:33 조회 : 3513         
성도의 대인 관계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성도의 대인 관계

사람들이 타인을 대하거나 만날 때에는 든든한 자기 힘을 바탕으로 하여 만나려고 한다. 가진 권력과 힘의 대변인으로서 등장한다. 고상한 윤리나 도덕 같은 것도 자신에게 힘을 실어 주는 훈장처럼 이용하게 된다. 힘과 힘의 만남 안에서 인간 사회는 어우러진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이런 힘이 되는 윤리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 무엇을 목표로, 무엇을 때문에 존재하느냐를 통해 그 인간의 근본 성향을 찾으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심판의 대상이다. 그 심판의 기준은 윤리도 아니요 도덕도 아니다. 그 나라 의를 구하지 않는 자라면 저주받아 지옥갈 수밖에 없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 근본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에게 의가 없어 문제이며 의가 없어 저주이다. 인간 사회에서 통하는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기를 해소해 줄 수 없는 품성이기에 기껏해야 죽음의 공포를 뒤로 돌리고 다른 자아로 등장시키는 능력 발휘한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죽음 앞에 직면한 순수한 자신의 모습과 괴리된다. 이것은 만나는 자들을 속이는 기술에 해당될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인간상은, 무와 죽음 속에 있는 존재로서 살고 있는 자이다. 항상 먼저에 불과하고 심판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자아의 모습을 지닌 채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나서는 자 되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성도가 대인 관계에서 갖추어 될 태도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빼고, 또한 남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등에 엎은 모든 권력과 권세를 제거한 채 그저 한 사람의 심판 받을 죄인으로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서, 있으나 마나 하는 입장에서 세상에 나서는 것이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분이 아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그 분 또한 자신의 모든 영광을 타인에게 대속물로 넘겨주는 것으로 일관하셨다. 사람 앞에 나서면서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할 분으로 나타나셨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본질을 어떤 식으로도 가리면서 살아가는 그 사회 한 복판에 예수님은 죄인의 본질을 드러내시면서 나타나셨다. 윤리와 거룩으로 포장된 종교 사회에 태어나셔서 인간들의 사이비한 도덕과 의의 속성을 폭로시키셨다. 그 분에게 짊어진 고난은 인간들의 죄로 야기된 상황이었다. 그 분은,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다. 곧 인간이 가야 할 길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4-25)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은, 살고자 하는 식으로 자신을 몰고 가고 있다는데 있었고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온갖 거룩성과 의로움과 윤리와 다 자기를 더 살리고자 시도하는 헛된 방안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코 자신을 무로 혹은 죄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데서 인간에게 있어 죄악의 굴레는 너무 단단하다. 차라리 거지와 세리와 창기와 소경과 문둥병자와 가난한 자들과 중풍병자와 강도가 홀가분하게 예수님과 관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티끌로 여겼고 또한 저주받은 자로 인정하고 세상에 존재했었다. 그들에게는 자기를 위장할 만한 그 어떤 권력도 갖지 못했기에 차라리 본질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갔다. 성직자들이나 가진 자들이 자랑하는 윤리나 도덕 생활을 지탱해 줄 경제적 여유도 없던 자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단지 예수뿐이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는 죽은 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저주스러운 처지야말로 모든 인간들에게 합당한 신분이었다. 이들에게 있어 예수님의 존재는 자신들이 처한 낮은 자리에서 동행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본질을 끝까지 지워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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