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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08:08 조회 : 3287         
벼랑 끝에 서서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벼랑 끝에 서서

죽음 앞에서 인간은 홀로 남는다. 모든 것들이 죽음과 함께 녹여진다. 결국에는 죽음 그 자체마저도 없어지게 된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그 순간이 인간 운명의 끝을 잡고 있다. 그 동안 인간은 죽음 안에서 살아온 것이다. 마치 영원으로 이어지는 철로 위에 들어선 기관차처럼 행세하면서 살아온 것이 우리들이기에 섬광처럼 산화하다가 폭발되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너무나도 친숙하면서도 마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죽음이라는 현실이다. 그 죽음은 남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죽음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본래의 자신으로부터 너무 거리를 벌려 놓고 살아왔다. 죽음을 일부러 잊고자 했기에 늘 착오의 세월을 지내 왔다. 죽음 위에 건설된 인생을 살아왔으면서도 외람 되게 영원을 기초로 해서 살고자 했다. 그래서 그 위에 건설된 모든 삶은 착오의 삶이 된다.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강제로 살게 만드는 식으로 변조시켜 왔기에 숱한 범죄를 불러 드렸다. 나만 계속 살리기 위해 나 외에 모든 것에 것에 대해여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다. 어서 죽어라고 고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다. 자신의 욕망만이 선으로 간주했고 그 의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욕망을 악으로 규정했다. 누구에게나 다 담겨 있는 죽음의 원액이 자기에게만큼은 마치 없는 것처럼 으시대면서 살아간다. 변명과 핑계에 몰두하면서 한 세월을 다 지새는 것이 인간들이다. 인생이 힘든 이유는 솔직하지 못한 품성 때문이다. 죽음의 존재로서 남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확보한 천사처럼 행세하면서 나서기 때문에 자기 내부에서 본성과의 괴리 현상이 발생한다. 죽음을 전하는 사자가 아니라 행복을 전하는 사자로 자처하기에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고 자신에게는 비극이 된다.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이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인생의 모순은 스스로를 속이기에 나타난 현상에 불과하다. 이 세계나 인간에게 있어 모순이라는 것은 없다. 그냥 죽어 가는 사물들뿐이다.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히 1:10-11) 이 세상의 멸망은 이 본문에 나와 있는 것처럼 확정적이다. 피조 세계는 주님이 벌리신 사역에 따라 사라져야만 하는 시점이 있다. 이 거대한 계획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변동되지 않는다. 주님을 모르고 주님의 계획도 모르기에 인간은 자신만을 위장하면 만사가 천국이 되는 줄로 안다. 자기만 아름답게 치장하고 돌아다니면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한 공간으로 다가오기 일 수 있다. 세상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인간 나름대로 별개의 계획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계획의 주님의 계획에 의해 부정되고 있으며 정죄의 대상이다. 이 세상의 주님의 계획 하나만으로 족하다. 이 하나의 계획에 대해서 성도는 전 생을 바쳐야 한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는 것은 자기 인생의 벼랑 끝에서는 것과 같아야 한다. 죽음으로 온 몸을 휘감고 있기에 더 이상 살고자 하는 유혹에서부터 자유롭다. 자아를 계발하거나 자아를 발전시켜야 되는 하등의 부담도 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자기의 죽음조차 뒤로 밀어낼 정도의 발전이란 인간의 본질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사도 바울은 늘 벼랑 끝에 서서 살아간다. 주님 안에서 그는 늘 죽은 자이다. 더 이상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은 세워 놓고 있지 않다. 그에게 한 가지 욕망이 있다면 그것은 빨리 죽는 것뿐이다.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빌 1:23-24) 사도가 아직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위함이 아니라 성도의 유익을 위함이다. 늘 이처럼 벼랑 끝에서 살지 않는 자는 필연적으로 주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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