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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12:31 조회 : 4044         
복음인 것과 복음 아닌 것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복음인 것과 복음 아닌 것

성도는 죽음 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삶이 실제의 삶의 대표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삶과 다르다. 일반인들의 삶은, 살고자 하는 의지, 즉 죽음 이전의 삶이 실제의 삶을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실은 죽음의 권세를 반영하는 것이다. 성도는 어디서부터인가 해방된 자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제적 해방이 복음을 참으로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2-23) 복음은, 단순히 신의 존재에 관심을 나타낸다든지 신의 활동을 생의 활력소로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에서 벗어난 그 세력의 위대함을 제공하신 생명 되시는 분을 증거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죽음 이 전의 차원에서 살고 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역설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기피하는 것만이 이들 사람들에게 삶에 있어 최선책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은사(선물)라는 의식보다는 노력과 애씀의 의식이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래야 자기를 사는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믿고 있다. 이들에게 죄의식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있다. 어쨌던 살아남아 놓고 볼일이다. 따라서 사망이 자신들에 대한 한평생 징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한평생 버텨 온 세월에 대한 큰 상(償)인양 여긴다. 산다는 것, 생명이나 생존은 그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땀흘린 품삯에 기초해야만 생성된다고 알고 있다. 이런 자들이 한국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들은 복음(기쁜 소식)을 모른다. 반대로 복음(기쁜 소식)을 괴롭고 부담되는 소식으로 보고 있다. 차라리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다시 만들어 낸 기쁜 소식을 머리 속에 집어 놓고 싶어한다. 이들에게 선물이라는 의식이 없다.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영생의 선물을 선물로 받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도리어 성경에서 말하는 선물을 짐으로 여긴다. "아이고 하나님, 이 복음을 증거하고 유지하려면 제가 한평생 얼마나 고생을 심하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은 알고 계시옵나이까?"하면서 불평하고 있다. 이들은, 생명을 힘든 지적 작업과 논리 작업을 통해서 수납하려고 하기 때문에 선물임을 믿어 주는 믿는다는 행위도 힘든 자신의 노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작 참 복음이 저절로 드러내는 해방감과 자유함에 전혀 생소하다. 즉 실제로 복음이나 영생을 선물로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이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5-46) 이 본문에 나오는 기분과 같이 못하다. 이들은 그 동안 자신을 스스로 살려 보고자 노력했던 것에 대해 너무나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마치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는 격이다. 자신을 죽음 속에 던져 넣을 줄 모른다. 죽음을 기피하고 거기서 도망치려 한다. 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5) 이 말씀은, 인간들의 어떤 행위와 노력도 하나님에게 소용없다

는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저 들은 죽음의 삯이나 뱉아내는 대상물일 뿐이다. 이점을 자아의 본질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된다. 이미 자기를 죽은 자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죄로 보는 것이다.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은 자신의 살아보겠다는 숭고하고 대견스럽고 가상한 삶의 의지에 기초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증거 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체는 이미 십자가에서 다 들통났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역설이 없으면 복음이 아니다. 복음이란 내가 전혀 못한다 라는 의식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대해서 죽어 있었고 실제로 그 죽음이 한평생 뒤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음 안에 있는 자에게 있어 모든 살고자 하는 자들의 추잡한 위선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뿌연 사망의 열매도 풍겨온다. 십자가 복음 안에서만 이 냄새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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