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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13:32 조회 : 3575         
하나님의 윤리관과 인간의 윤리관의 차이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하나님의 윤리관과 인간의 윤리관의 차이

"신을 위하여 무엇을 해드릴까?"라는 의식 안에는 인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들어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우리가 해 드리자" 라는 자신들의 태도 자체를 인간들은 귀하게 여긴다. 과연 예수님이 인간들의 이런 태도를 기뻐하실까? 옛날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낱낱이 시범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의 왕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졸라대었고 협박했던 그들이 바로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이다. 왕을 따로 세우겠다는 취지는, 얼른 보기에는 보다 잘 정돈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갸륵한 제안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의 속까지 들여다보신다. 이런 인간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제 이 선으로 퇴진시키고 자신들이 뽑은 자와 자기들이 잘 의논해서 나라를 꾸려 나가려는 의도였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내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이 모든 행사로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김같이 네게도 그리하는도다"(삼상 8:7-8) 이들은, 왜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이스라엘에게는 인간의 왕이 필요치 않는 그 취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고 있다. 그저 하나님을 자신들의 라이벌로 여기고 있다. 소위 기독교 윤리에 대해서 똑같은 태도를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 하나님을 모든 사태의 실제 주체로 믿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틈만 있으면 인간들은 조금씩 자기 발자취를 밀어 넣으려고 애쓴다. 물론 겉으로 말하는 취지는 경건하기 이를 데 없다. "여러분 하나님 믿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거기에 안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위대한 사명을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달란트를 받았습니까? 여러분들이 참으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지 않으려거든 최선을 다하여 주님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합시다. 만약 이 생각에 도전하고 저지하려는 자가 있다면 온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 정면으로 대드는 마귀의 자식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주님이 어떻게 세상을 이끌고 있느냐 하는 것은 전혀 볼 줄 모르고 단지 자기가 하는 소위 '주의 일'에 완전히 매료되어 미쳐 있다. 즉 이들은 자신의 경건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여기는 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윤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창세 전에 택한 자만 찾아서 천국에 보내고 나머지는 사정없이 지옥 불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아마 고상한 윤리에 도취된 자 눈에는 예정된 대로 선택 작전에 나서시는 하나님의 태도가 참으로 비윤리적이고 잔인하게 보일 것이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사랑을 베풀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지을 것이다. 그들은 또 주장하기를, "인간 속에는 윤리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형상'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통된 매체를 따라 올라가 보면 인간들의 선한 양심이나 하나님의 마음이나 한결 같이 같은 모양의 선한 윤리가 표출될 것이다. 이 원리에 따라 하나님도 선한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우리(거듭난 자)들의 이 윤리적 태도에 대해서 큰 칭찬을 내리실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죄와 저주의 형편 안에서 놓여 있어 본 적이 없는 자들이 예수님을 가상해서 조작해 낸 결과이다. 즉 거지 나사로나, 십자가에 달린 강도나, 간음하다 잡힌 여인이나, 창녀로서 구원받은 마리아나, 바디매오 같은 거지의 입장에 있지 않은 자들이 여전히 자기 자존심이나 체면에 대해서 신학적인 의미를 부가해서 생긴 결과이다. 실패한 자는 더 이상 자기 윤리나 자신의 경건성에 기대를 걸지 않는 반면에, 이들 가짜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더욱 빛내기 위하여 예수와 함께 하려는 자들이다. 가롯 유다가 끝까지 보여준 점이 바로 이점이다. 즉 신앙이 세속화된 것이 윤리주의이다. 하나님의 윤리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필히 자기 윤리에 신명을 바친다. 참으로 위험하고 멀리해야 하는 자는, 자기 윤리를 포기못하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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