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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17:16 조회 : 3678         
예수님과 희생 양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예수님과 희생 양

속죄 의식(意識)이란 모든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들어 있는 심성이다. 자기 양심에 흠집이 난 것은 것은 어떤 식으로도 제거하고 싶은 것이다. 종교들이란, 결국 '죄 의식 처리'를 다루게 되면서 형성된 것들이다. 자신이 속해 있는 그 종교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 헌금은 합리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가가 주요 과제가 아니다. 날마다 신도들 마음속에 떠오르는 죄의식에 만족스럽게 제거해 줄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불법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신도들의 넓은 마음이다. 따라서 신도들은, 자신들이 감추고 있고 또 모르고 있기에 재수 없이 신으로부터 매맞고 있는 점을 교주들이 제대로 파악해서 들추어 내어 주고 또한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인위적 방식만 제 때에 제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 한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우, 속죄에 관한 의식(儀式)은 노골적일 정도도 핵심 분야이다. 유대교에서는 소나 양을 잡아서 죄를 제거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에 와서는 예수라는 분이 자신이 친히 속죄양이 되었기에 그 예수를 믿음으로 죄가 씻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번잡스럽고, 시간 낭비와 비용이 많이 드는 유대교적 방식과는 달리 기독교의 속죄 의식은, 신도들의 간단한 짧은 생각만으로 속죄가 이루어져 버렸다. 이 신앙 고백에 뒤따르는 갖가지 의무들, 예를 들면, 경건한 폼 잡기와 윤리 생활, 엄숙하고 중후한 예배 분위기 유지하기, 교회라는 경제적 단체에 대한 비용 부담, 잡무에 대한 봉사 제공, 성직에 대한 특별 대우와 존경 강요하기 같은 것을 교회측에서 요구하더라도 차라리 자발적 해 드리고픈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신은 인류에게 너무 간편한 속죄의 길을 열어 준 것으로 받아 드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있다.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비복음적이라는데 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억울하게 징벌 받고 박해 당한 그 예수라는 분에 대해서 깊은 동정심과 감사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으로 결코 복음이 아니다는 점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 신도들은, 소위 전문 종교인들이 예수님의 희생양 인상을 가지고 얼마나 장사 잇속을 채우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마치 유명 비극영화를 상영해서 관람객을 울려 주고서는 혼자서 휘파람부는 영화관 주인과 같다는 사실을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대중들은 참 예수님의 희생을 정신을 알고 싶어하는가? 그들이 과연 예수님이 소개한 그 길을 가고자 하는가? 천만에 말씀! 정말 제대로 십자가와 복음을 소개받았다고 한다면 아마 대중들은 그들이 복음 들은 것을 후회하고 오히려 전에처럼 희생양 영화관에 앉아서 그 영화를 돈주고 관람하는 편이 자기들에게 속 편하다는 사실을 새삼 다짐하게 될 것이다. 예수, 그 예수는 정말 훌륭하고 멋있고 대단한 분이고 위대하고 감동적인 분이기는 하지만 그저 자기 앞에 타인으로만 머물러 주었으면 바랄 뿐인 것이 대중들이다. 그 예수님이 직접 자기 안을 차지해서 자신이 예수처럼 산다는 것을 너무나도 끔찍한 사태라고 그들은 예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참 예수님은 너무나 참혹한 삶을 살았기에 철저하게 거부하고 싶은 제 1순위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그저 인위적인 속죄 방식만 요구한다. "어떻게 하면 죄를 씻을 수 있습니까?" 그러나 참 예수님은 이렇게 대꾸하신다.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니, 죄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그리고 참으로 그 죄를 미워하고 싶습니까?" 대중들은 이렇다. 죄가 미운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자기를 건드리는 자는 다 미운 것이다.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요 15:22-23)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찌르기 위해서 오셨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눅 2:34-35) 참으로 복음을 아는 자는, 예수님에게 고마워하는 자가 아니라 속죄 받고자 하는 자신을 한없이 미워하는 자이다. 속죄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선택이었다!(요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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