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HOME > 자료 > 기독교의 허상1,2
2006-12-04 15:26:31 조회 : 1961         
인간 사상에 있어 '되먹임' 현상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인간 사상에 있어 '되먹임' 현상

사람들은, 자기를 알기 위해서 주의 상황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것을 '적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적응을 위해 주위와 보이지 않는 교류를 시도한다. 자기 생각으로 실천에 옮기다가 거기에 따르는 반응들을 잘 분석해서 그것으로 자기 생각의 위치를 재조정하는데 자료로 이용한다. 이것이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이든, 적응이든 주위 환경으로부터 계속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 그 영향에 따라 자기 생각도 끊임없이 수정된다. 이것이 환경으로부터의 '되먹임 현상'이다. 이 세상에서 사람에 의해서 저질러진 모든 일은 이러한 환경적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니 그 사물의 가치는 인간이 내뱉는 욕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이다. 애초부터 사람이 만든 모든 것에는 절대적 가치가 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기껏해야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 의해서 수시로 달라지면서 적응해 가는 인간 욕구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로서 인간은 주위 환경과 자기 생각을 일치시키려는 쪽으로 행동하게 된다. 마치 자기 생각이 옳은 것으로 간주되는 쪽으로 말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적 요소와 노력들이 다 이런 식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인간들로 하여금 수력 발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수력 발전 댐을 건설하라고 지시라도 한 것처럼 자신들의 아이디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나님께서 인간들보고 지시하시기를, 출장 갈 때는 꼭 자동차 타고 가라고 하셨다면 애초부터 인간에게 다리는 있되 앉은뱅이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발명은 하나님의 뜻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인간들의 경험상 주위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생겨났다.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결코 자동차 발명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자연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자연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서 존재하고 있다. 단지 인간들이 그 자연에다 자신의 욕구를 발동시켜서 보다 빨리, 짧은 시간 내에 왕래하고 싶어서 자동차를 발명했던 것뿐이다. 그러니 자동차의 발명은 이 우주의 진리도 아니라 법칙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멀다'라든지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법칙이 마치 진리라도 되는 것처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의식이라는 것이 자기가 투사한 의식이 사물로부터 재투입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물에 불이 가하면 그냥 부글부글 끓는다. 결코 물이 온도 100°C 임을 스스로 알아차려서 인간의 자존심을 위해 마지못해 끊어주는 것이 아니다. 물 끓는 온도를 100°C로 정한 것은 인간들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절대로 진리가 될 수 없다. 이처럼 인간들은 주위 환경의 특색에 따라 자기만의 고유의 이미지가 조성되는데, 자기가 만든 환경에 대한 일방적 견해에 대해 인간은 알아서 거기에 복종하고 굴복하며 살아간다. 결국 자기가 자기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이 모습을 마치 진리에 복종하며 살고 있는 양 착각한다. 만약 환경이 달라지게 되면 인간은 거기에 맞혀 지금까지 신봉하던 삶의 원칙을 국물 버리듯이 얼른 쏟아 버리고서는 자기에게 부합되는 환경으로 다시 조정한다. 이처럼 환경은 끊임없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환경에 의한 '되먹임'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회에 대해서도 인간들은 똑같은 행세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행동을 긍정해 주는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과 이상적인 교회관을 늘 상정하면서 교회 다닌다. 예를 들면, 어느 한 순간에 개과천선했다든지 크게 회개했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게 되면 이 때 머리 속에 느껴진 하나님을 참된 하나님으로 간주하고 만다. 일종의 적응이며, 자기 경험에 의한 진리성 부여이다. 여기서부터 욕구가 또다시 움틀거리기 시작한다. 즉 자신의 경험과 부합되는 교회상을 이상적인 교회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를 자기 멋대로 창안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 놓고서는 도리어 자기가 꾸려 가는 그 교회의 운영 상태를 통해서 자기 행동의 옳고 그름을 점검 당하는 계시로 삼게 된다. 이것이 '가짜 교회 되먹임 현상'이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이 없는 교회이다. 왜냐하면 참 교회란 오직 진리 되시는 주님께서 홀로 만들어 나가시기 때문이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