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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15:28:22 조회 : 1867         
교회 비판의 의의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교회 비판의 의의

사람의 자존심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명을 바쳐 회사를 설립한 사주(社主)에게 있어 그 회사는 자신의 상징적 자존심이 되고, 다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헌신적인 희생을 해 온 주부에게는 남편과 자식들이 상징적 자존심이 된다. 교단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수십년 동안 정기적으로 출석하며 목돈을 교회에 헌금한 교인들에게 있어 그 교회는 자신들의 상징적 자존심이 된다. 따라서 교회를 비판할 때는 특정 교회만이 나쁘다고 비난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방식이다. 모든 교인에게 있어 모든 교회는 다 상징적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자기 교회가 좋다고 하거나 자기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거나 상관없이, 부정되지 않는 자존심은 죄악의 열매이다. 따라서 교회는 지속적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교회보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상징적 자존심을 향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이런 비판의 와중에서 참으로 진실한 성도 같으면 그 외부의 비판을 수용하여 내부 안에서 자신이 자기에게 그런 비판을 하는 채비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도 곧장 한계에 부딪힌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를 비판하는 것이 선행의 한 단면으로 내부에 자꾸만 누적이 될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자기 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교회이기에 얼마나 올바른 교회인가!" 하고 희열과 자족 속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쌓여 새로운 자존심으로 재등장된다. 따라서 남의 교회를 비판하면서, 혹은 자기 교회에 대한 비판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드리므로서 참다운 교회가 되리라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한다. 교회 비판은 이래나 저래나 복음 전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다만 개혁 흉내내는 위선적 교회들만 확산시켜 나갈 뿐이다. 참된 교회 비판은 "과연 당신이 그리스도 몸입니까?"라는 것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시도되어야 한다. 즉 교회를 비판했을 때, 거기에 대해 변호하거나 방어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앞으로는 그 비판을 모면할 목적으로 뭔가 개혁을 새롭게 시도하겠다는 의도를 보이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의 몸이 아니다. 참된 성도 같으면 그런 교회 비판과 상관이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교회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의의를 말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35) 이 본문은, 주를 섬기는데 있어 결혼 생활이 주는 우려점을 미리 예시한 내용이다. 이처럼 교회 비판의 지향점은 오직 주를 섬기는 쪽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천국이나 지옥이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은 이런 사상을 확실히 전달한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 5:1-5) 사도의 교회 비판은, 교회나 교단 내에서 통용되는 법이나 규칙에 의존해서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교회 내에서 일어난 현상, 즉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벌어진 현상을 복음적으로 설명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결코 교회 개혁을 유도하거나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주 예수님께서 아직도 살아 역사 하신다는 지극히 마땅한 현실에 대해 왜 그토록 감각이 없느냐를 추궁하고 있다. 비록 사도의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러한 현실 안에 영으로 함께 있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그 어떤 사태에도 사도는 주 예수를 증거 하는 차원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 결코 자기 교회 수호를 위해 비난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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