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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15:29:06 조회 : 1668         
안심과 불안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안심과 불안

생명이란 늘 약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비약을 도전을 시도한다. 이것이 생명 있는 인간들에게 사는 즐거움이 된다. 이 즐거움은 긴장과 느긋함의 반복 속에서 피어난다. 긴장이란, 사람을 불안감 속으로 집어넣는 것을 말한다. 불안이란 기분 좋은 감정은 아니다. 사람은 힘들게 한다. 하지만 생명은 약동성은 늘 새로운 불안이 기다리는 곳으로 몸체를 데리고 다니게 된다. 그래서 불안은 인간의 운명처럼 되고 말았다. 이 불안은 지속적인 성취나 성공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새 새로운 환경이 조성해 낸 중량감이 있는 불안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인간에게 자꾸만 새로운 시비를 걸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긴장 분위기는,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전적으로 의지하고 마땅히 기대 것이 없이 항상 홀로 살도록 방치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절대 신이 아니면서 이미 신처럼 스스로 서야 한다는 부담감만 잔뜩 짊어진 채 세상을 통과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세상의 통치자가 아니다. 모두를 자기 것으로 소지한 소유자도 아니다. 그저 이것저것 얻어먹는 신세이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자기에게 무엇이든지 제공하는 제공자를 만나지 못한 상태에 있다. 얻어먹어야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고 자기 것은 본인들이 찾아 나서 손수 가꾸어야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따라서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과 자신의 내면의 성질이 서로 일치되지 않는데서 불안감이 일어난다. 이런 인간에게 영원한 해결책이 있다고 한다면 계속해서 자기에게 생존에 필요한 것을 제공해 대는 전지전능한 제공자를 만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 17:24-25) 이 본문에서, '친히 주시는 자시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러한 하나님에게 완전히 기댄 자에게는 이론상 결코 불안감이 없이 오직 안심만 남아 있어야 한다. 신앙의 분위기는 곧 안심하는 분위기이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19-21) 이 본문에서는, 제자들의 두려움과 예수님의 평강하라는 당부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왜 제자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것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께서 그들과 함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며 현실이 되어 찾아 들었기 때문이다. 안심이란, 안심을 강요한다고 생겨나는 현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안심을 가지시는 일시적으로 성공해도 이러한 성공은 또 다른 환경 속에서 자기 마음이 어떻게 반응할 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심을 자기 내부에서 정리하려는 것은 더 큰 불안의 바탕이 될 뿐이다. 안심하고 평강은 순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그 때 그 때마다 주셔야 하는 선물의 차원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런 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 속에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엉뚱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임에 틀림없다. 즉 "내가 믿는 하나님은 만민에게 친히 생명과 호흡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는 평강과 안심의 사람이 되지만 만약 내가 그 하나님을 믿고 있지 않다면 나는 계속해서 불안감 속에 잠겨 버리게 될꺼야. 아, 나는 바로 이런 미래에 대해서 정말 불안하다"라는 사람에 불과하다. 안심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은 신앙이 아니면 종교적 기능을 연마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고 방식 자체가 참 하나님하고는 상관없는 자이다. 안심하고 있는 사람은 그냥 하나님만 생각하면서 안심하고 자일 뿐이다. 그리고 자기의 믿음 상실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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