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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15:33:08 조회 : 2240         
요즈음 교인과 예수님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요즈음 교인과 예수님

고생을 안하고 천국 가려는 요즈음 교인들과, 고생하시면서 천국을 달성하신 예수님 사이의 격차는 골은 갈수록 깊어진다. 예수님은 천국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데 요즈음 교인들은 돈을 못 벌어 안달 나서 울고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시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 23:4-5) 이 본문에서는, '재물=허무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허무하게 보는 것에 대해서 교인들은 그것을 진리로 간주하면서 교회는 정기적으로 출석하고 있다. 놀고 다 놀고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예수님보고 이러한 자기의 뜻을 긍정하고 후원해 달라는 의도 이외에는 달리 설명이 안된다. 교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의 머리 속에도 '교회 재정 = 허무한 것' 이라는 공식이 들어 있지 않다. 도리어 '교회 돈= 진리'는 공식에 매여 있다. 결국 온 교회가 그렇게 되면 '예수님= 돈'이 되고 만다. 예수님은 이런 사고방식을 둘러싸인 채 설교를 하셔야만 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요즈음 교회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재물=허무한 것'이라는 말씀을 비웃는 그런 집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예수님 같으면 오늘날의 이런 교회 안에서 무어라고 설교하시겠는가? 아마 다음과 같은 예화를 들고 나셔서 말씀하실 것이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19-24)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런 예화가 곧 자기를 겨냥한 말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연 예수님을 계속 상대할 필요성을 느꼈을까 아니면 죽어서 자기 눈앞에서 없어져 주기를 바랄까? 요즈음 교인들이나 목회자들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단지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질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 기독교 내에서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에 대한 기피 현상과 더불어 대대적인 추방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총체적 배도 현상이다.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가진 자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칠 직위에는 일체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방비하고, 목회자들에게 대해서는 목사 면직 사태까지 이르게 한다. 소위 '집단 괴롭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이비한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의 진리는 오직 하나 뿐이다. "돈 모아 교회 키우자!" "돈 없이 교회 없다!" "목사는 대우 해 준 만큼 일 하고, 일 한만큼 교회 커진다!" 이들도 강단에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저주의 지옥 불에 대해서 설교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설교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해당됨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실제적으로 주의 형제들을 못살도록 압박을 가하면서도 추상적인 예수 존재에 대해서는 극도의 찬양과 예배를 드리기에 열중한다. 이들이 교회 안에서 벌리는 모든 집회와 예배는 결국 보다 돈을 더 확보하기 위한 쇼를 벌리는 곳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은 교회 단체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진리임을 그들은 외면해 버린다. 사람에게 있어 돈이란, 자신을 보다 즐기게 만드는 수단으로서 사용된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한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지구를 방문해서 십자가 자신 사연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독하고 비웃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인간들에게 있어 교회라는 것도 그저 노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들은 기어이 지옥에 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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