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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0:59:14 조회 : 1680         
승 부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승 부

인간은 날 때부터 승부에 모든 것을 건다. 농사 지어도 승부 근성으로 짓고, 공부를 해도 승부 근성으로 하게 된다. 신을 믿는 것이나 자선 사업을 해도 승부 근성에서 하게 된다. 일평생 하는 모든 일이 승부에 살고 승부에 죽는 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 승부 근성의 결과에는 반드시 복수심이 피어나게 되어 있다. 자기 뜻대로, 자기 원대로 되지 않은 것에 관한 복수심이다. 자기에게 패배를 안겨 준 모든 상황에 대해서 복수로서 보상하려는 것이다. 승부에 도전하고 그 결과에 대해 복수하고, 바로 이런 과정의 반복을 되풀이하다가 한평생을 다 보내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이런 승부욕만 믿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니 여기에 필연적으로 착각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착각이란 실재가 아닌 것을 자기 안에서 실재라고 간주하는 것을 뜻한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아니라 행위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그대로 되어질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말한다. 이러한 착각은 자신의 승부 근성과 복수심으로 왜곡된 정신 세계를 구성해 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따라서 인간들이 아무리 분투 노력해도 늘 비실재가 주는 부질없는 생활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인간들에게 있어 패배를 안겨 준다. 승부에서 패배하기 싫어서 더욱 더 승부에 매달릴수록 패배의 수렁에 더욱 깊이 빠진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승부 세계로서의 실재 세계를 늘 염두에 두고서 그 허상의 틀 자체를 과감하게 허물어 버리는 것이 너무나도 큰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항상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다. 승부욕도 없고 복수심도 없이 산다는 것은 도무지 태어날 때부터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허상의 세계에 주눅 들어 있다. 성경은, 인간들의 이러한 승부 근성의 허망함을 낱낱이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의 성경을 직접 읽어 내려간다 할지라도 이 사실을 감지해 내지 못하는 것은 악마에 의해서 인간의 정신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정신은 허상만 생각하게 되어 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즉 인간은 자기 자신이 이미 악마에 의해 노리개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악마가 인간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승부와 도박의 세계에서 몸이 달아 그것에 중독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미 패배될 수밖에 없는 노예로서 부리고 있다. 그래서 악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구세주는, 바로 이러한 승부욕과 복수심을 인정하지 않는 구세주이다. 승부 세계에서 탈출이란 바로 승부욕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나님 약속의 백성들인 히브리인들이 애굽 나라에서 나올 때, 그들은 자신의 힘과 승부 근성과 복수심이 자신들의 구원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도리어 그들은 자신들이 철저하게 패배할 줄 알았다. 바로 이 정신이 구원받은 자의 정신이다. 자신을 패배자로 재인식케 하는 것이다. 세계를 비실재로 읽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착각과 혼돈과 망상으로만 살았기에 이 세계가 자기를 위한 세계인 줄 알았던 것이다. 실재 세계는 인간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세계이며 인간 자신도 하나님의 이름과 그 영광에 집중되라고 창조된 세계이다. 이것을 알 때만 비로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이라는 말씀으로부터 의미가 받게 된다. 실재 세상에 그리스도 중심이기에 승부를 해도 그분이 하시고 복수를 해도 그분의 소관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만약 어떤 사태에 대해서 못마땅해한다든지 불쾌감을 갖는다는 것은 아직도 기존의 인식의 틀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소극적으로 신앙 의무에 태만하므로서 하나님을 약 올려주는 복수극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신앙은 의무도 아니며 과제도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태와 그 복수도 오직 주님의 차원에서만 벌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참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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