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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1:00:13 조회 : 1799         
기 쁨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기 쁨

기쁨의 원인이 밝혀지는 것은 다른 기쁨과의 교환을 통해서이다. 큰 기쁨이 왔을 때 전의 기쁨은 더 이상 기쁨이 되지 못하고 새로운 기쁨에 의해서 추방될 기쁨에 불과한 것이다. 하나님이 성도에게 주시는 기쁨은 늘 최종 기쁨으로 다가오신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여기서, 무화과 열매의 풍성과 감람나무의 소출과 외양간의 소와 구원의 하나님이 상호 비교되고 있다. 과연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냐 아니냐를 이런 비교를 통해서 확인시키시는 것이다. 만약 외양간의 소가 가득함이 더 큰 기쁨으로 작용한다면 그 사람에게 있어 구원의 하나님이란 실제에 있어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다. 왜냐하면 기쁨의 원천이 더 큰 기쁨으로 말미암아 소실되었고 허상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편 4:7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 본문에서도,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곡식을 많이 가지고 새 포도주의 풍성과 상호 비교하고 있다. 만약에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이 더 큰 기쁨으로 작용한다면 아직 이런 자에게 있어 하나님은 허상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얻기 위하여 많은 곡식과 새 포도주를 포기할 그런 교환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흔히 언급되고 있는 있는, 구원의 기쁨이라는 것도 새로운 경쟁 상대에 나와서 그것은 최종 기쁨으로 억누를 때 비로소 확인되고 또 확인될 뿐이다. 구원받은 기쁨에 있어 다른 기쁨으로 계속적으로 추가시킬 수 없는 이유는, 구원이란 자신이 소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이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장악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존의 것에 대한 부정과 빼앗음을 기정 사실화 하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슥 10:7-8) 이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휘파람 불어 자기 백성을 불러 모았고 여기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즐거워하며 기뻐한다는 것이다. 결코 이스라엘 백성이 따로이 자기 소유물이 있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에 의해 소유 당함에 대해서 기뻐하는 것이다. 모두를 빼앗기고 또 없어져도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는 것이 성도가 누리는 최종 기쁨의 상태이다. 어떤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21-22) 이 부자 청년에 있어 영생과 예수님은 부차적 기쁨밖에 되지 못했으며 부차적 기쁨이란 결국 근심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며 과연 이러한 참다운 천국의 기쁨을 소지할 수 있는 자격자와 권리자는 누구신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이 본문에서 밭을 산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오히려 주님이시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참다운 기쁨을 찾아내시는 안목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바로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임의로 받는 자에 불과하다. 천국의 시작은 주님으로부터이지 결코 성도로부터 시작될 수 없다. 인간은 기껏 참다운 기쁨이 아닌 것을 소유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만이 무엇과 무엇을 교환해야 하는 것인 줄 아시는 분이다. 이 교환을 통해서 천국의 탁월함과 월등함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교훈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신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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