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HOME > 자료 > 기독교의 허상1,2
2006-12-05 12:51:02 조회 : 1849         
기다림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기다림

하나님의 인내는 인간들의 조급함을 공박한다. 인간에게는 하나님만큼의 인내가 없다. 인간들은 나름대로 최종 상황을 구성한다. 그러나 거기에 투입되는 정보의 양이나 사태 파악이 하나님처럼 풍부하지 못한다. 세상을 보다 넓고 깊숙이 파악해 낼 능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조급한 종말상을 염두에 두다가 다시 수정하곤 한다. 인간들의 종말론은 자신 주위에서 일어난 원통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근거로 작성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7-11) 주의 강림은 이 세상 모든 이에 대한 오류에 대한 최종 수정책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처벌 기준과 행사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기다림은 인간의 기다림과 충돌과 갈등을 발생시킨다. 주님의 종말관은 사람들의 견해로 포착되지 않고 자꾸만 비켜 가면서 다른 종말로 변신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계속해서 고유의 왜곡된 종말관을 토해 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기다림'이 담고 있는 내용들을 전향적으로 수정시키신다. 전혀 색다른 기다림을 갖도록 유도해 내시는 것이다. 기존의 인간들이 고대했던 그 기다림의 연장이 아니다. 다른 차원의 기다림이다. 인간에게 있어 기다림이란 자신의 힘을 전부 소모해서라도 정신 집중시키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다림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기다림의 핵심 부분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기다림은 완벽했다. 그분은 자신 있게 자신의 고난과 부활을 예언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16:21) 이와 같은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말씀 성취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연적인 선을 따라 살아 가셔야 했던 것이다. 여기에 비해 인간의 기다림은 말씀 성취와는 무관하게 자기 포부 성취만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이런 차이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님 뿐아니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에 대해서는 증거 하는 사도들과 제자들까지 핍박한다. "신은 왜 우리 인간의 간곡한 기다림을 무시하느냐"하며 대들기 일 수 있다. 소망이라든지 기다림의 그 출발 지점을 우리 자신들에서부터 설치하도록 해서는 아니된다. 헛된 시작이 헛된 기다림만 넉넉히 구경시켜 줄뿐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5) 이 말씀에 의하면 소망의 내용물은 우리가 이 세상 그 어느 구석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구경한 적이 있는 것을 것을 더 확대시키고 팽창시켜 소망으로 삼는다면 그 자는 참된 소망에 참여할 혜택을 버린 것이다.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것을 확대 해석하여 자신을 매료시킬 소망 덩어리로 삼고 사는 것이 인간들이다. 따라서 인간들의 소망은 하나님 보시기에 우상적 소망에 불과하다. 성도가 주님의 최후 처분을 손꼽아 고대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성과 성급함에 대해서 제발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서 목표 수정되기를 간곡히 고대하기 때문이다.주님께서는 날마다 성도의 잘못된 '기다림'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 진정한 주님의 강림의 의의를 밝혀 주신다. 성도의 '참음'은 타인을 향한 분노에 대한 해결책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기 위한 '기다림'이요 차질 없는 약속 성취에 대한 희망이다. 성도의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이 빚어낸 끈질김이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