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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00:17 조회 : 4015         
설교자의 자세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설교자의 자세

설교자는 편하다. 들리면 들리는 대로 전달하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뭉치이다. 그 말씀에 대해 제 2의 자기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 그런데 설교자에 있어 제일 힘들고 곤란한 지경은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경우이다. 성경 안에 들어 있는 말씀이 곧바로 자기를 향하여 날아오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치는 남의 이야기처럼 되어 버리는 사태를 당할 때이다. 이렇게 되면 설교자는 할 말을 잃는다. 할 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말을 해대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다. 그저 연기일 뿐이다. 세상에는 소위 해석학이라는 것이 있다. 글 문맥을 따라 구조를 살펴서 일관성 있는 의미를 발췌해 낸다는 것이다. 또는 청중들과의 의사 소통이 가능하도록 공감대를 형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설교는 그런 게 아니다. 말씀 스스로의 다가옴의 능력이 설교자의 마음에 부딪쳐서 강권해야 한다. 그것뿐이다. 납득하고는 전혀 상관없다. 설득력을 동원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그저 축구공처럼 자기에게 다가온 말씀을 그대로 드러낼 뿐이다. 설교자는, 자기가 믿는 거라든지 믿을 만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현재 믿고 있든 혹은 알고 있는 내용이든 상관없이 그냥 부딪친 말씀을 말씀의 그 능력 속에서 반사적으로 전달할 뿐이다. 그러니 설교자는 설교자의 고백이 아니다. 절대로 본인이 소유한 것을 청중들에게 전달해서는 아니된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설교자 자신의 지적 능력일 뿐이다. 설교는 오직 말씀 자체의 능력 안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설교자가 자신이 이해한 바를 남들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그런 행위는 청중을 자기 생각 안으로 강제로 끌어당기려는 심적 폭력이다. 설교할 때는 설교자의 입장을 상실해야 한다. 자신의 고민이나 혹은 자신의 감격과 기쁨을 실어서는 아니된다. 이런 것도 일종의 청중 유인책이 된다. 빛이 거울에 반사되어 다른 것으로 방향을 틀 듯이, 말씀 자체의 진실성이 다른 이에게도 말씀의 능력이 되도록 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설교자의 입지이다. 설교자가 말씀으로 사는가 못사는가를 통해 설교자 자질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능력 속에는 인간의 자질성 여부가 끼여 들어갈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말씀은, 인간이 그것을 지켜 줄 때 비로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은 스스로 능력 줄 자 알아서 찾아간다. 따라서 말씀을 묶어 둘 조직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설교자 그룹'이라는 것이 생겨날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말씀이 스쳐 지나가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설교자라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교자를 되게 하는 주도권은 계속 말씀이 쥐고 있지 설교자 자신에게는 그 어떤 권한도 없다. 절대로 설교자 자신이 자신을 독려하여 설교자로 계속 남게 할 수 없다. 설사 그런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설교자가 자신에 대해서 '설교자 됨' 자체를 확고한 신분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무지이다. 설교자는 설교할 때만 설교자이다. 말씀의 능력을 받았기에 그냥 전하는 것과, 계속 전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하는 업무일 뿐이다.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격차 있는 일이다. 말씀 전달에는 해석이라는 것이 필요치 않다. 왜냐하면 성령이 들어 있는 자들에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따로 특별한 훈련이 요구치 않기 때문이다. 말씀을 믿는 것이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능력이란 모든 복잡함과 혼잡한 논리를 일소에 부치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성경은 모든 해석 방법을 거절하므로서 오직 성경만으로 충분함을 보인다. 모든 성경 말씀이 다 믿어지는 설교자는 참 편하다. 성경에 대해 억지로 의미를 조성해 내야 할 이유를 갖지 않는다. 성경에는 문자란 없다. 그저 말씀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문자가 없기에 해석할 거리도 없다. 해석을 거부되고 말씀 전달 현상만 남는다. 주님에게는 설교자만 필요하지 해석자는 필요 없다. 성경 말씀을 문자로 이해하여 해석하려고 덤벼든다면 거기에는 해석자 자기 얼굴만 도로 찾을 뿐이다. 예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서 드러내신다. 그리고 말씀 전달의 능력자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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