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통합검색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HOME > 자료 > 기독교의 허상1,2
2006-12-05 13:10:50 조회 : 3551         
윤리 종교는 미신이다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윤리 종교는 미신이다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 포부가 있고 소원하는 바가 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신에게 부탁하려고 교회와 종교단체를 찾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도 하나님 나름대로 계획이 있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 사회를 상대로 양보 없는 실천력을 행사하신다. 그러니 자연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뜻이 충돌 될 수밖에 없다. 서로가 자신들을 절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마저도 자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 한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마치 인간들이 행함에 따라 자기네들의 소원을 달성되는 사은품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서 윤리가 활개를 친다. 윤리나 도덕은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스러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도 인간들에게 뭔가를 요구하신다면 인간들이 실제로 해 낼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인 윤리와 도덕이라는 범주 안에서 실천될 수 있는 명령이라고 아예 선입감을 두고 만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실제적인 계획과 뜻은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홀로 행하실 일이다.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히브리서 10:7) 즉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서 감당할 분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 책에 의해서 예언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분이 제대로 온전히 말씀을 혼자서 성취했는가? 그리고 그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9-10) 이 본문에 보면 모든 성경은 예수님이 유일하고 온전하신 대제사장을 됨을 보이시기 위한 것이다. 과연 예수님께서 온전히 뜻을 이루었기에 그를 믿는 자가 과연 거룩함을 단번에 얻게 되었고 이같은 행위의 목적은 '저것을 폐해 버리고 둘 째 것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반드시 첫것을 폐지해야 한다. 만약 폐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미신이다. 미신이란 효과가 사라진 신앙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짓 효과로서 채우는 짓이다. 하나님의 뜻을 윤리와 선행의 안목에서 해석하게 되면 복과 저주가 순전히 자신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기게 된다. 혹시 매사가 잘 안 풀리게 되면 선행에 집중해서 그 동안 미진한 행운과 복을 다시 채워 보려고 시도할 것이다. 또한 평소에 주위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많은 선행을 했다고 여기면 그 동안 축적해 놓은 선행이 월등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다소 융통성 있는 악행을 저질러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징벌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신이다. 인간들의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종교적 본심이다. 성경은 바로 이런 심성들이 우상 숭배에 해당되는 욕심이며 교만인 것을 말씀하시고 있다. 이런 태도에서 결코 하나님이 원하는 의가 생겨나지 않는다. 의가 생성되지도 않는 행위를 가지고 복과 구원을 운운하는 것은 아직도 '옛 것' 안에서 살아가는 식이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 이 '옛 것'에 여전히 사로잡혀 살아가는 숱한 미신을 정죄하고 오직 유일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공적에만 근거해서 살아가는 거룩한 자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이다. 이들은 '새 것' 안에서 머무는 자들이다. 자기의 행동 여하에 따라 복과 저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아는 자이다. 착한 일을 더 많이 했다고 그것이 더 의가 보태지는 것이 아니라 악한 일을 더 했다고 더 죄인 되는 것이 아님을 아는 자이다. 단지 자기 속에 여전히 숨쉬고 있는 악의 성향에 파악하여 죽을 때까지 주님 앞에서 회개하면서 사는 자이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자세가 바로 복 그 자체임을 수용하는 자이다. 따라서 회개란, 복이나 구원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은 자만에게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다. 그러나 회개가 안되는 자들이 그저 최선을 다하여 윤리적인 반성과 착한 일을 열심히 도모하고 악한 일을 배척하려 한다. 이런 행위는 분명히 회개하는 자세가 아니다. 아직도 자기 죄를 모르는 자의 한계이며 미신일 뿐이다.



  ◁ 이전글   다음글 ▷
 
게시판
자유게시판
질문/답변
복음의 메아리
성도의 칼럼
사진첩
이전게시판글
이전질문/답변
개혁노회
도서출판후원회
성경신학
성경신학1
성경신학2
신학과철학
성경중심사상과 그 전개
성경강해
구약
신약
신학강의 1
신학강의 2
신학강의 3
자료
십자가를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택
기독교의 허상1,2
말씀의 조약돌
피와 성전과 교회
조직신학의 고속도로
과학의 정체
50여명의 신학자들
인간 구원을 위한 신학
철학의 함정
교회사
지옥의 하나님
예수사회
 
 
지역강의
강의일정
광주강의
대구강의
부산강의
서울강의
안산강의
울산강의
대전강의
기타강의
블로그
블로그
 
Copyright ⓒ 2006 by 십자가마을, All rights reserved.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91길 10-11 신동아빌라 1동 201호   전화 : (053) 986-0172   H.P. : 010-3511-0172   상담 : 이근호   이메일 : knowcross@hanmail.net
홈페이지 관련 문의: 관리자(sungjaepi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