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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9 12:22:00 조회 : 5302         
6-4 형태의 생성 이름 : 관리자(IP:122.47.57.66)

 


(4) 형태의 생성

형태(form)는 물질을 지배하며, 물질에 실체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완성시켜 특정한 속성을 지닌 특별한 종류로 만든다. 하이젠베르크는 물질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실험에 의하면 물질은 완벽한 변환성을 지닌다는 것이 알려졌다. 모든 기본 입자들은 충분한 고에너지가 제공된다면 다른 입자로 변형될 수 있으며 또한 운동에너지로부터 간단히 생겨날 수도 있고 빛에너지와 같은 에너지의 형태로 소멸될 수도 있다. 따라서 실제로 여기에서 우리들은 물질의 통일성에 대한 궁극적인 증거를 지니게 된다. 모든 기본 입자들은 우리들이 에너지 또는 보편적 물질이라 부르는 똑같은 본실체(substance)로 구성되는데 그것들은 물질에서 보여지듯이 각기 다른 형태들로 나타난다."

자연에서는 조직화의 각 단계에서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여 그것을 지배한다. 예를 들면, 화학적 단계에서는 물이 단순히 수소와 산소 기체의 혼합물이거나 집합체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러한 혼합물은 굉장한 폭발성을 지닐 수 있는데 이에 반해서 물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물은 불을 끈다. 두 기체가 단순한 혼합물에 불과하다면 플라스크에서 그것은 기계적으로 분리될 수가 있겠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물은 두 물질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며 그것은 고유의 일체성(unity)을 지닌다. 수소와 산소가 갖는 독립적인 일체성은 사라지고 물이라는 행태의 상위 단계로 흡수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기존 구성원들의 우연한 재배열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물질의 탄생인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수소와 산소 원소는 물의 실제적인 구성 성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것들은 물속에 단지 잠재적으로 존재할 뿐이며, 마치 물이 파괴되면 수소와 산소가 없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물이 분해되면, 즉 물이 파괴되면 실제로 다시 회수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흔히 화합물의 '부분품'으로 간주되는 물질들은 벽돌이 건물의 부분품으로 간주되는 것과 다르다. 건물에서 벽돌은 자신의 개별성과 본질을 유지하며 어떤 물질 변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물질이라도 새로운 물질을 형성하기 위해서 아무 비율로나 결합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물은 항상 부피로 따져서 산소 부피의 두 배가 되는 수소가 있어야만 생성된다. 산소와 수소가 똑같은 비율로 결합하면 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산화수소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그 새로운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만일 복잡한 것을 간단한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환원주의이다. 만약 상위 단계의 속성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합리하고 인과론적이 아니다. 소립자 단계에서는 단지 여섯 개의 아원자만이 존재하는데 광양자, 양성자, 전자, 중성자, 그리고 두 종류의 중간자(neutrino)들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자라거나 생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부구조'를 갖지 않으며, 모든 무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힘이 주어져야만 작용한다. 소립자들은 비록 그 내부에 엄청난 힘을 보유하지만 활동 능력은 극도로 제한된다. 별들은 이런 동력원을 이용하여 열핵 원소를 통해 빛과 열을 발생시키며 부산물로 무거운 원소들을 생산한다. 천문학자들은 별들의 일생(life cycle)이라고 말하지만, 그 별의 생명은 그것이 시작될 때의 질량에 의해 엄격히 결정된다. 태양 질량의 1/20 또는 그 이하의 수소 구름은 서로 응집할 수 잇지만 열핵 원소를 개시할 만큼의 충분한 압력을 발생시키기에는 내부 중력이 너무 미약하다. 이러한 결과는 거의 항성에 가까운 행성을 만들게 되는데 목성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 양보다 많은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성하지만 핵반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압력을 조정하는데는 크게 모자란다. 별은 진정 그 자체가 성장한다거나 생식한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일체성을 갖는다기보다는 집단성을 갖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소립자들의 상호작용은 양성자, 전자, 중성자, 중간자들보다 훨씬 다양한 융통성을 갖는 100여 개 정도의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원소들을 만든다. 우리는 보다 높은 단계로 조직화된 화합물, 유기분자, 광물질 등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각각 자신의 고유한 속성과 능력을 갖느다. 따라서 규모가 증대하면 양자역학의 불확실성이 사라지는 대신 안정성은 증가한다.

구조에 의하여 복잡해진 유기물 분자는 일종의 '내부'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체를 잃지 않고서는 어떤 것과도 반응할 수 없다. 어느 유기물질도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반응할 수 있으며 따라서 무궁한 화학적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생물체의 몸 밖에서는 분자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추구하는 데 극히 '태만'하거나 느리다.

결정체는 외부로부터 단순한 첨가만 있어도 크기가 증가하지만 동식물 성장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물질 변형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결정체는 3차원적으로 똑같은 형태가 반복되어야 한다. 그것은 중심부에서 표면까지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것이다. 그러한 구조에서는 그 내부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부 구조는 어떠한 기능도 수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정체는 그 구성분들이 표면에 첨가됨으로써 발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식이 아니다. 더욱이 불이 '번져가는' 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떠한 내적인 원리도 결정체의 성장을 제한하지 않는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생명과 정신 사이에서 생겨난다. 생명은 물리학과 화학에서 다룰 수 있으나 정신은 물리학과 화학의 영역에서는 다울 수 없다. 비롯 식물이 다른 무생물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독특함과 자가 조절성을 지니기는 하지만 그들이이 갖는 영양 섭취, 성장, 세포대사 등과 같은 식물적 과정은 단순히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식적 감지는 물리학과 화학의 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람과 동물에 대한 기계론적 접근은 물질주의를 전제로 한다. 심지어 환원주의를 부인하는 출현주의자라 할지라도 마음의 본성에 대해서는 물질주의적 선입관을 가지고 있디. 예를 들면, '나는 정신이나 의식을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나타나는 출현적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인슐린 분자나 DNA의 이중나선이 그런 것처럼, 정신이나 의식도 물질의 속성 속에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다.'와 같은 주장들이다.

따라서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 물질주의이며 모든 행동을 이것으로 설명한다. 물질과 그것의 속성은 정말로 의식적 경험, 즉 감정과 지각 인식, 기억과 정서 등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여러 비평형 모양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특징은 자기 조직이다. 자기 조직이란 계의 미시적 성질로 설명할 수 없는 계의 거시적 성질이다. 평형 상태에서 자란 소금 결정의 입방체 모양은 각 이론이 쌓이는 방법의 결과라는 것을 보았었다. 그러나 튜링 구조의 벌집 모양은 아염소산 이온 -요오도화 이온- 말론산의 혼합물에서 분자와 이론이 서로 작용하는 방법에서 온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균일했던 계에서 이 규칙적인 모양이 저절로 나타나는 것을 물리학자들이 대칭 파괴 과정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예이다. 처음에는 어느 방향을 보아도 꼭 같지만 계는 각 방향들이 동등하지 않는 상태로 전이한다. 다시 말해 계의 대칭성이 낮아진다.

인간의 정신 속에 무언가 대칭에 매력을 느낀다. 완전한 대칭은 반복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다. 종종 불완전한 대칭 역시 정확한 수학적 대칭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느낀다. 자연계 속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두드러진 패턴들은 모두 대칭들이다. 대칭은 미학적 개념이면서 동시에 수학적 개념이기도 하다. 이 개념 덕분에 여러 가지 유형의 규칙적인 패턴들을 분류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를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대칭성 파괴는 역동적으로 보인다. 그 패턴의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물체 또는 계의 대칭성이란 그 물체를 불변의 상태로 유지시키는 모든 변환이다. 이것은 곧 '과정의 물체화 thingification of process',이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대칭이라는 사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패턴들에서 나타나는 대칭성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예를 들어 잔잔한 연못을 생각할 수 있다.

연못의 수면은 완벽하게 매끈하고 충분한 넓이를 가지기 때문에 일반 표면과 마찬가지로 수학적 평면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조약돌을 하나 던져 본다. 그러면 거기에는 원모양으로 퍼져가는 파동의 패턴을 볼게 될 것이다. 원인은 조약돌이다. 조약돌을 연못에 던지지 않았다면 그 파문은 보지 못하고 계속 평평한 2차원의 연못이 된다. 이 파문은 곧 대칭 파괴이다. 이상적인 수학적 평면은 무수한 대칭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대칭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조약돌을 일으키는 파문에서 일정한 패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극미한 요안들이 완전한 대칭성을 깨뜨린다. 그 결과로 대칭적인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의 대칭은 소립자의 구조에서부터 거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척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대부분의 화학분자들은 대칭적이다.

분자보다 조금 큰 규모로 시야를 넓히면, 세포구조에서 대칭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분열중인 개구리의 배(胚)는 처음에는 구(球) 모양의 세포에서 생명을 시작하며 곧 포배(胞胚)를 잃게 된다. 포배는 역시 구형인 수천 개나 되는 작은 세포이다. 그런 다음, 포배는 스스로 일부를 삼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낭배(囊胚) 형성 과정이다.

이처럼 이 우주 속에는 그토록 많은 대칭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대칭성을 구태여 깨뜨릴 이유는 없다. 지금 파괴된 대칭성이 존재하더라도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실제 형태라기보다는 잠재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비평형 구조의 다른 특징은 요동에 대해 안정하다는 것이다. 카오스적인 행동을 보이는 계는 요동에 극도로 민감하다. 아주 작은 자극으로 엄청난 차이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계가 한계 순환에 갇히면 요동이 있어도 계는 다시 제 궤도로 돌아간다. 요동에 대한 안정한 동역학적 구조를 소산구조라고 부른다. 소산 구조는 더한 여분의 에너지를 소산할 (흩어버릴) 수가 있다. 이것은 간단한 흔들기와 같은 보조적인 진동계와 극적으로 대비된다. 흔들이를 밀면 흔들이가 더 크게 흔들린다. 그에 비해 소산 진동자는 밀려도 잠깐 동안의 교란 후에 밀리기 전과 똑같은 주기 운동을 되물이 한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 소산계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한 가지 행동 방식을 선택하면 그 방식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그 방식이 안정한 조건을 벗어나면 계는 (주기 배가 쌍갈림 같은) 전환을 거쳐 새로운 안정 상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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