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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7 16:06:34 조회 : 5593         
16 근대 2 이름 : 관리자(IP:220.81.176.151)

16 근대 2

이근호 2004-02-29 18:32:52, 조회 : 424, 추천 : 60

이와 같이 사고와 연장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신 안에서 실제적으로 하나인 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두 속성이라는 점이 강조되면, 결국 개체에서도 사유와 연장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연장적 개체에도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신의 다른 본성인 사유의 측면이 공존하는 것이다. 즉 존재하는 모든 자연물(연장물)은 신 안에 그것의 관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자연은 더 이상 실체 이원론에서 보듯이 활동성이 없는 수동적인 죽은 기계가 아니다.

신 안의 관념이 자연의 원인이며 자연의 영혼이므로 자연은 그 자체로 살아 생동하는 것이다. 즉 자연은 신을 통해 활동성을 갖는 유기체적 자연으로 이해된다. 이 영혼의 힘이 자연 안애서 자연을 자연이게 하며 자연이 스스로 자라고 변화하며 성장할 수 있게끔 생성시키는 힘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에 깃든 이 생성시키는 힘, 있는 것을 있게 하는 힘을 '능산적(能産的) 자연'이라 하고 그 힘에 의해 전개되고 발현된 자연을 '소산적(所産的) 자연'이라고 구분한다. 시공 안에 자리잡고 나타난 자연이 소산적 자연이라면, 그 자연을 자연으로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생성의 힘은 곧 능산적 자연이며 이는 자연의 근원, 자연의 실체인 신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자연의 근원인 능산적 자연은 자연을 자연되게 하는 힘이며, 있는 것을 비로소 존재하는 것으로 있게 하는 무(無)의 힘, 무위(無爲)의 도(道)와도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자연 안의 생성의 힘, 능산적 자연은 전개된 자연인 소산적 자연의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소산적 자연 안에서 그것을 생성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거듭해서 , '신은 자연에 대해 그 초재적 원인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이다'고 강조한다. 신은 모든 사물의 존재 및 본질의 작용인이다. 자연 안에서 생성하게 하는 힘, 그것은 마치 세상을 창조하는 말씀의 힘과도 같은 것이다.

즉 개체가 신을 그 원인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신 안에 그 개체의 관념이 필연적으로 있기 때문이다. 신 안에 존재하는 관념이 곧 자연 세계의 원인이 되며 자연 생성의 힘이 된다. 자연에 발생하는 모든 것이 신 안에 그 관념을 가지므로 자연에는 우연적인 것이란 없다.

개체로서의 자연을 탈실체화하여 그 자체 내에 자기 자신의 존재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봄으로써 자연은 결국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을 자신의 존재 근거, 자신의 기반으로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자연의 기반이 곧 신의 관념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피조물에서 그, 자신의 실체적 기반을 박탈한다는 것은 곧 그것을 전적으로 창조자에게 의존하게 하며 그 창조자의 기반 위에 세우는 것이다.

분리에 앞서 동일성이 주장되어야 하는 것은 동일성을 벗어난 두 실체의 분리가 결국은 하나의 상실, 따라서 전체의 상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세의 기독교가 자연을 신의 피조물로 이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창조자)과 피조물을 질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결국은 자연을 신과 관련짓지 않고서 그 자체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근세적 사고를 낳게 된 것이다.

유한한 세계와 무한자, 즉 자연과 신을 분리시키면 그 무한자는 결국 유한한 세계로부터 추방당하고 유한한 것이 절대화되는 오류를 낳게 된다. 다시 또 유한한 것들 중에서 사고체와 연장체를 두 실체로서 분리시키면 결국 그 중의 하나인 정신이 배제된 연장성만이 유일한 실재로서 절대화 되는 오류를 낳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개체를 탈실체화시킴으로서 개체적 자연이 결국은 신을 그 존재 근거로 가지며 신 안의 관념이 자연의 원인이라고 봄으로써 자연에서 관념성과 연장성이 별개의 실체적 구분이 아님을 강조한다. 결국 자연을 동일성의 차원에서, 즉 신적 관점에서 전체성으로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빌헬름 라이프니츠Leibliz(1646-1716)의 단자론도 역시 데카르트에 의해서 뒤에 남겨진 문제들에 대한 답변이다. 특히 육체와 영혼에 관계에 대한 질문과, 이 양자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그러하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에게서 볼 수 있는 철학적 신론의 새로운 착상을 늘 견지하고 있었다. 그가 비록 존재론적 신증명을, 그것은 우리의 정신에 토대를 둔 무한자에 대한 직관에서 발생하는데, 이것은 모든 유한한 현존의 우연성을 자기 스스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에서 종결시킨다는 의미에서 이루어진다. 즉 사물의 현존은 본질의 종결상태로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고유한 길을 육체적 세계와 영적인 본질 사이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했다. 여기서 데카르트나 스피노자, 그리고 말르브랑슈는 그에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는 우연하게 존재하는 유한한 사물의 독자적인 현존이 거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또한 사물의 자유와 창조 사건을 일으킨 하나님의 자유가 거할 자리가 없기 때문에 만족할 수 없었다.

라이프니츠는 말르브랑슈의 입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와 더불어서 한 하나님의 표상을, 그 하나님은 분명히 자기의 창조에 관여해야만 할 자인데 창조자의 완전성과 조화시킬 수 없다고 판단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볼 때 이 완전성은 하나님의 불변성에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도 하나님의 관여 없이 발생하는 자연 세계의 상(像)을 생각했다. 이것은 그의 적수로서 뉴턴의 입장에 섰던 새무얼 클라크 와는 반대되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자연세계는 데카르트의 '연장으로서 사물' 개념에 기인할 수 없다고 라이프니츠는 생각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그 외에도 뉴턴Newton(1642-1727)에 따르면, 데카르트의 생각과 달리 육체 개념이 연장을 통해서만 정의될 수는 없었다.

뉴턴에 이르러서야 이제 육체는 양이나 질에 대한 특성을 통해서 규정되었다. 뉴턴은 더욱이 양(量)을 육체에 내재하는 힘이라고 정확하게 정의했는데, 이 힘은 관성에서 (변화에 대항함으로서, 버티는 힘으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 힘이란 절대 시간과 절대공간 개념을 견지한데서 설명되어진 것이다.

분명 뉴턴에 와서 집약된 근대 과학의 성과를 칸트는 그것을 철학적으로 영유한 것인 동시에 과학에서는 객관적 실재였던 공간과 시간을 현상과 더불어 주관 내부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과학과의 차이를 두었다. 즉 그것은 근대 과학이 제안한 외재적인 시간·공간을 이제 주관의 내부에까지 끌어들임으로써, 현상은 물론 경험과 판단의 주체를 그 절대적 시간과 공간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인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칸트의 시도는 근대에 나타난 다른 시도와 비슷하다. 즉 외부의 신을 인간 개개인의 내부로 끌어들인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변환은 근대적 주체 개개인의 판단과 경험이 이미 근대의 수학적-물리학적 시간과 공간 속에 포섭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환을 통해서 칸트는 개인의 경험과 시간, 공간과의 관계라는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칸트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며 경험 이 전에 이미 있어야 될 조건이며 직관형식으로 간주했다.

다시 말해 개인들의 경험과 판단을 규정하고 제약하는 '선험적 조건'으로서 시간과 공간을 정합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개인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그들이 갖는 공통성-공통된 경험과 공통된 판단-이 가능하게 되는 지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선험적인 것 (a prioi)과 경험적인 것의 대비를 절대화함으로써 선험적인 것과 초험적인 것, 비경험적인 것을 동일시한다. 이는 그가 발 듣고 서 있는 근대 과학이 그랬던 것인 만큼 불가피한 것이기는 했으나, 그로 인해 선험적인 것이 사회적으로 성립하며 역사적으로 가변화 될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칸트에게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한에서만 선험적이고, 초험적인 한에서만 선험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이고 초험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면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 때부터 자연과학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이 급전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물론 칸트조차도 불변의 기초라고 생각했던 유클리드적 공간개념은 로바체프스키-보요이와 리만의 새로운 기하학으로 인해 그 유일성이 상실했고, 절대공간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으로 인해 무너졌다.

1915년에 발표된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간-공간이 별도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계며, 시간은 더 이상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이고, 공간은 중력장에 의해 구부러져 있다는 것이 널리 공언되기에 이른다. 그 때부터 자연과학은 공간은 물론 시간조차도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며,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칸트주의적 철학적 인식론 시도는 파산했으며, 이는 그 어떠한 류의 정당화주의도 현대에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은, 신학을 대체한 과학이 무능함을 드러낸 데서 야기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과학이 이른 그 위대한 성과를 진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해주는 새 경험으로 드러난 것이다.

라이프니츠도 역시 육체의 양을 육체에 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은 뉴턴과 완전히 일치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해석으로 인해서 자연을 전체로 생각하는 입장이나 단자론의 토대가 놓였는데, 이것은 그것들 방식대로 하나님이 원(原) 단자에 대한 모사(模寫)다.

여기서 라이프니츠는 육체를 단자를 나타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장으로서의 사물이나 사유로서의 사물에 대한 데카르트 학파의 이원론을 극복했다. 물론 상이한 실체들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데카르트 학파의 난제는 라이프니츠의 경우에도 단자들이 서로간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 단지 신적인 원단지에 토대를 둔 세계 질서를 반사시키는 것 뿐이라는 형식으로 되돌아왔다.

여기서 말하는 세계질서는 물체의 현상이라는 차원에서 물체 사이의 역학적 관련성을 통해서 명료해지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이것을 단자의 질서와 물체 현상의 역학 질서 사이에 있는 '예정조화'라고 했다.

라이프니츠 철학이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피조적인 현실성을 이해하는 경우에 우주의 질서를 신의 지혜 안에 정초하는 것과 상대하여, 신의 의지에 대한 의존성이 철저하게 그 배경에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들은 모두가 실체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데 달려 있다. 이런 존재자들은 하나님의 외부에 있는 다른 실체들에게 의존적일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관계들은 여전히 실체의 우발적인 규정이라 보았다.

존 로크Locke(1632-1704)는 이미 데카르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생득관념이 있다는 데카르트 철학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로크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감각적 인상을 통해서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빈 공간이다. 우리의 의식은 이런 인상에 이름을 붙인다.

그런 다음에 같은 이름을 다른 경우에 사용하며,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관념이 되게 한다. 이 후자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 습득되는 것이다. 마치 셋 더하기 넷은 일곱이다 는 진리는 학습되어야 하는 것과 같다.

칸트는 후에 1781년 순수 이성 비판에서 더 이상 생래적인 지식을 언급하지 않고 모든 경험에 선행하는, 그리고 받아들여진 인생을 숙지하는 우리 의 오성의 기능에 대해서 언급함으로써 중도의 길을 모색했다. 즉 이성의 창조성에 대한 강조가 결정적인 요소였다.

로크는 데카르트와 달리 본유관념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에게 신관은 우리 정신의 본성을 통해서 간단히 기초가 탄탄해질 수 없었다. 신관은 오히려 우리 의식의 모든 다른 내용처럼 경험에서부터 나온다고 보았다.

로크에게는 이 경우에 물론 우선적으로 우리 스스로 만들어 가는 근본적 경험, 즉 우리 고유의 현존 인식이 핵심이다. 로크에 의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다른 사물의 현존에 대해서 그런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이러한 지식은 분명히 신관(神觀)을 포함한다.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으로부터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무에서는 무밖에 아무 것도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 로크는 시초에 스스로 존재라는 그 무엇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고 전제했다.

로크의 자연권 사상도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으로서의 고유 자연권은 교회나 국가 같은 권위 기구가 승인한 특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대지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을 공유하지만, 개개인은 자신의 '신체'를 '자기만의 것'으로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자신만의 재산도 가능하다고 했다. 이러한 천부의 권리는 그동안 대지(땅)에 매여 있는 인간성을 땅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신의 노동 투여에 따라 얻어진 사유 재산 안에서 비로소 근대적 자아의식의 현실성을 갖추도록 했다. 즉 이 세상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제대로 보이는 가장 숭고한 업적인 물질의 획득에 있다고 보았다.

중세의 신학에 의하면, 인간의 노동이란 신이 정해진 운명 속에서, 그 운명을 위해 마땅히 책임을 완수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여겼지만 존 로크는 달리 보았는데 그것은,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데 있어 노동의 가치가 발휘된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유재산이란 자선의 필요조건이 되는 한에서만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를 갖는다고 했다. '부자는 항상 기꺼이 나누어주고 기꺼이 성체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부자들이 가진 부와 권력은 신과 전체 사회를 위한 것이다. 그들은 신과 인류의 공동선을 위하여 부를 관리하는 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올바르게 사용하지 아니하면 도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의성직자들 대부분은 중세 장원제도의 경제·사회적 관계는 자연의 영원한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 의하면 이러한 관계는 신의 섭리에 따라 예정된 것이다. 각 계급마다 서로 다른 일이 부여되는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속영주든, 교권영주들 간에 영주의 지위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신이 부과한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충분한 재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중산계급의 개인주의철학에 입각한 노동관과 경제관이 대두되면서 이것이 근대적 형이상학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영국에서의 존 로크의 이신론(理神論) 철학을 낳게 한다. 영국 이신론의 전성기는 1696년 蝡 1736년에 이르는 40년 간이었다.

로크는 이성을 판단의 시금석이 되게 했고, 또한 종교 전승의 계시 요청을 가능한 전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신론자들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1696년 존 톨랜드는 로크와는 현저하게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기독교를 반(反)이성적인부터 만이 아니라 모든 초이성적인 것으로부터도 역시 정회시키려고 했다. 이로써 그는 로크에 의해서 전개된 바로 그 이성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는 초이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이성의 본질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계시 인식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로크와 달리 이신론자들의 현시적 감정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능가하는 생명 현실성이라는 기적에 대해서 인간의 지식이 제한 받고 있다는 의식이 부족했다.

계시 요청을 이성적으로 검사하는 일은 성서의 역사-비평적 연구와 연결되었다. 그러나 자연은 성경의 계시에 비해 비밀이 적은 것이 아니라 명제를 들고 나온 주장이 1736년에 버틀러Joseph Butler(1692-1752)로 통해 제기 되었다.

그는 이신론자들의 피상적인 합리주의와 맞섰는데, 우리 인간들의 자연 인식은 거의 전적으로 개연성 판단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그릇된 이성개념에 근거하게 되면 그만큼 비이성적으로 것으로 보인다.

버틀러에 의하면 신앙을 역사적으로 질문할 때는 분명히 그 어떤 수학적 증명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외의 모든 것에서도 그런 증명을 포기하는 게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개연성 판단의 기초에 맡겨두는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하나님을 인간의 정신처럼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하나님의 정신이 그 양적인 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정신과 무한하게 다른 것이지만. 이에 반해 칸트는 질적인 면에서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고 피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자신에게서 유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물을 홀로 모든 것이 되는 다른 그 무엇과 비교한다는 질의 차이는 측량할 수 없는 게 틀림없다'

칸트Kant(1724-1804)는 자기 사상의 초기에 무한성이라는 전통적인 술어에 사로잡히지 않고 모든 유한한 사물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비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칸트는 이미 1763년에 하나님의 무한성에 대한 언급을 비판했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에 대한 개념은, 그 특성상 수학적인 의미이며 따라서 피조된 사물과의 관계에 포함된다고 '주장 될 수 없는 일종의 동일성' 하나님에게 적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가 하나님을 전적인 접합성 개념으로 특징화함으로써, 그에게는 이제 세계가 창조와 상응하는 그 시점이 곧 무한성이었다. 무한한 세계라는 표상은 '大직공장의 무한성에 어울린다.'고 했다.

창조자의 무한성과 상관개념인 세계 무한성에 대한 표상은 우선 쿠자누스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이런 표상에서는 물론 창조자와 구별되어 있는 세계가 오직 유한한 피조물이 무제한적인 다양성으로 표상되었다.

또한 칸트는 세계를 단지 공간적으로만 무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세계가 시작적으로는 끝이 없지만 시작은 있다고 보았다.

칸트는 이런 무한한 세계를 스스로 순수 기계적인 질서에 놓여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하나님이 세계 진행에 '기회 원인론적'으로 관여하거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 어떤 것을 차용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칸트는 행성 체제가 혼돈의 원상태에서 출현하여 순수 기계적 법칙으로 진행한다는 자신의 학설을 신학적 논증으로 방어했다. 일반 법칙을 통해서 야기된 세계의 조화와 질서에는 자연의 근원이 유일한 최고의 오성에 근거한다는 암시가 놓여 있다고 보았다.

이런 논증은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으로부터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우주 신학적 증명을 시도하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칸트에게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창조 질서의 우연이 하나님의 창조 행위의 자유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는 관점이 중요했는데 이는 플라톤의 우주기원설과 다르다.

중세기의 기독교 창조 신학은 플라톤 사상의 지속적인 영향으로 인해서 창조를 하나님이 정신에 현존하고 있는 이데아의 전형에 따라서 이미 준비된 재료(질료)가 구성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빌헬름 오컴은 이런 견해를 하나님이 창조 행위에 속한 자유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플라톤의 후계자들은 창조 행위를 하나님의 영에 놓여 있는 이데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했는데, 라이프니츠는 하나님의 전능 표상을 하나님의 지혜라는 척도와 연결시킴으로써 이런 사상을 새로운 정점에 이르도록 했다.

그런데 칸트는 다르게 인식했다. 창조를 하나님의 정신에 현존하는 이데아의 전형에 따라서 재료가 구성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한편으로 하나님과 대립해 있는 독립성을 질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사물의 피조적 질서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떨어져 있다고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라이프니츠에게는 쿠자누스 학파나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사상에 대한 사색이었다.

이에 비해 칸트는 사물의 가능성이 하나님 안에 그 토대가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 행위 안에서 그에게 선재 하고 있는 가능한 사물의 질서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 될 수 없다. 즉 사물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 견해에서 볼 때, 세계 현실성에 대한 관점이 즉 세계 사건의 질서가 그 피조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면, 또한 하나님과 그 지혜를 구별하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의존성을 파악해낼 수 없게 하는 일종의 독립성이 하나님에 의해서 형상을 입고 질서가 잡힌 재료라 할 수 있는 질료에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칸트는 습관적인 물리 신학적 관찰 방법을 반대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세계 발전은 우연성을 통해서 세계의 피조성을 인식하게 된다. 전체적인 면에서, 그리고 질서 구조라는 면에서 발생하는 이 세계의 우연성은 칸트의 경우에 세계를 하나님과 묶는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끈이다. 세계가 완전히 하나님에게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끈이다.

세계와 그 질서의 우연성이 의미하는 바는 그 세계의 현존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한 질문을 열어두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더 이상 자연철학적으로 답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상은 만약 그것이 우연하다면, 자신의 근원에 대한 그 어떤 유비도 획득할 수 없다.

칸트에게 있어 존재하는 것은 우연하다. 즉 자기 존재의 '내적인 가능성'을 자기 자신의 내부에 갖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성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기초는 그 소여의 가능성과 모든 가능성의 기본을 전제할 경우에 가능할 뿐이다.

사실적인 존재자들과의 관계에서 실질 토대인 그 근거를 전제할 경우에 말이다. 세상은 오히려 그 순수한 사실성에서 볼 때 무로부터의 창조처럼 볼 수는 없으며, 또한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도 없는 것 같다.

칸트의 논증에는 사실상 하나님의 현존을 이성으로부터 증거하자는 게 아니라 이성을 사실성과 묶어서 증명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신론을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론적 이성을 위해서도 역시 신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성의 필요를 단지 주관적인 면에서만 충족시킨다.

주관적인 면에서 이성에 없어서는 안 될 신관을 단지 이성의 관념으로서만이 아니라 객관적 리얼리티로 수용한다는 것은 우선 실천 이성의 일이다.

칸트는 시공(時空)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하나님에게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의 주관성에 토대를 둔 인간적 직관 형식으로 다루었다. 공간은 무한한 하나님의 속성과 일치시키지 않았다.

칸트는 시간에 대해서는 이와 비슷한 논증을 펼쳤다. 시간을 전체로 직관하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후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시간의 단편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와는 달리 이런 기능을 세계 정신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성 탓으로 돌렸는데, 왜냐하면 이 세상은 우연이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는 기하학적인 진리를 신관(神觀)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칸트는 바로 그 진리를 인간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진리에 대한 신학적 기초가 인간 중심적 토대에 놓임으로써 바로 칸트와 라이프니츠 사이의 독특한 차이가 불거지게 되었다.

중세기 철학은 주관성을 인식 행위 안에서 창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능동적 지성이 인간의 영혼에 배열됨으로서 진일보 했다. 인식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간 정신의 창조성으로 인해서 인식하는 실체가 변조되는 게 아닌 하는 질문이 부각되었다.

이런 질문의 대답은 쿠자누스 이래로 다음과 같았다. 즉 사유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이 창조성은 그의 피조성 가운데서 야기되는 하나님의 창조적 생산성의 모사(模寫)다. 칸트는 이런 해결책을 거부했으며, 오성 개념의 초월적 연역법으로, 그리고 감각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오성 개념에서 추상적으로 확증된, '대상과의 관계'로 대체했다.

칸트에게 있어 이성 개념은 오성을 사용하도록 종합하는 일만 하는데, 이성은 이런 일을 통해서 어쨌든지 끝장나는 게 아니다. 따라서 이성 개념은 존재하는 것들을 구성하는 원리들이 아니라 단지 경험한 인식을 종합하고 진보시키고 확장시키기 위한 규칙일 뿐이다. 즉 '규제하는 원리들'이다.

이런 표현이 물론 플라톤이 사용한 것과 연계되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완전히 비플라톤적이다. 말하자면 실제적 대상과 상반적이라는 뜻이다. 플라톤에게 관념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칸트에게는 '모든 현상의 절대적인 총체는 오직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즉 그 어떤 실제적 대상이 아니다.

칸트는 이성의 원리나 혹은 관념 하에서 경험을 종합하는 많은 형식들을 구별했다. 여기서 그는 형식상 이성의 추론에 대한 세 가지 종류들(범주적인, 가언(假言)적인, 선언적인) 언급하고자 했다.

그는 사유하는 주체의 절대적인 단일성이라는 주체를 서로간의 조건적인 세계 현상의 절대적인 단일성과 구별했으며, 또한 신관에 근거해서, 사유 일방의 모든 대상에 대한 조건의 절대적인 단일성과 구별했다.

칸트는 이렇게 세 형식으로 구분함으로써 특수 형이상학의 대상들을 다음과 같이 셋으로 요약했다. 영혼, 세계, 하나님.

이들은 더 이상 이상의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을 일치시키기 위하여 규제하는 관념으로 파악되었다. 이렇게 하므로서 자기 시대의 자연과적 세계 인식과 전승된 유신론적 형이상학의 주제 사이에 놓인 갈등을 해결해보려고 했다.

유신론적 형이상학이 세계를 하나님의 창조로, 그래서 유한하다고 생각했다면 근대의 고전적 자연과학에서는 세계가 시공간적으로 무한하다고 취급되었다.

전통적 형이상학의 세계가 궁극적 구성요소에서 발생되었다면, 자연과학에서 연구된 리얼리티는 무제한적으로 부활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이상학적 전통이 자유를 인간의 몫으로 생각했다면, 자연과학적 관점에서는 일반적인 인과율적 필연성이라는 표상이 지배했다.

유신론적 형이상학이 세계 현상의 인과율적 흐름을 제일의, 무조건적인 원인으로 돌렸다면, 자연과학적 세계 서술은 이러한 입장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칸트는 자신의 도덕철학 논문에서 하나님의 실존을 전제하지 않고는 인간의 도덕적 규정들은 확실한 게 아니라고 했다.

윤리 의식은 도덕률을 의식하는 데 토대를 두게 한다. 이 도덕률은 이성과 더불어서 주어지며, 이성이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요청되는 곳 이외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 행위의 원칙을 일반화하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요구하는 것을 '정언(定言) 명령'이라고 불렀다. 이런 명령은 가언(假言)적으로만 타당한, 즉 무언가 목적에 선택적으로 의존적인 명령과는 달리 정언적이다.

그는 하나님의 현존을 모든 의무 일반의 토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 가능성으로서의 지선(至善)을 세계 안에 불러일으키고 촉진시키기 위해서 우리 현존의 자연적 조건을 다루는 것만이 의무적인 일이라고 한다.

인간이 의무의 요구를 지복에 대한 열망 밑에 설정함으로써 충동의 순서를 전도시키고 잇지만, 선한 원리가 인간에게 어울린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칸트의 종교논문에 따르면,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화되었다. 즉 '도덕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인간 관념'의 원형이 우리의 이성 안에 놓여 있는데, 이 원형의 한 예가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화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는 인간을 갱신하는 장본인이 아니라, 개개인들에 의해서 완성되어야 할, '사유 방법의 혁명'에 해당하는 한 예에 불과하다. 이 혁명은 개개의 사람들이 지켜야 할 의무의 요구를 자극함으로써 악을 향하려는 기질을 극복하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적 이성 신앙이야말로 교회 신앙에 대한 최고이 해석자라는 말이 이에 해당된다. 이것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 규정에 대한 진술인데, 이 규정에서 도덕이 역사적으로 주어진 종교에 의해서 토대가 놓이게 아니라 역으로 종교가 도덕에 의해서 토대가 놓였다.

도덕성과 관계된 종교의 기능은 신학의 경향에서 볼 때 칸트와 연계된 세 가지 중요 국면에서, 즉 초자연주의와 각성 신학과 리츨 학파에서 서로 상이하게 규정되었다. 물론 칸트의 도덕적 합리주의를 교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결과였다.

초자연주의에서는 칸트의 이론에 따라, '초감각적인 대상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아무 것도 확정할 수 없다'고 했다. 슈토르는 1794년 칸트의 철학적 종교론에 대한 소견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도덕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칸트의 소견에서 보는 대로 도덕과 종교를 병존시킴으로써 도덕의 토대인 종교의 불가피성과 역사적 계시의 권위를 변호했다.

슈토르에 따르면 도덕률의 구속력은 지선을 보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의존적이라고 보았다. 도덕률이 우리 의지의 본성과 어울린다고 할 때, 또한 의도와 실행의 충동이 틀림없다고 한다면 인간에게 응답하는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 신앙은 불가결하다고는 것이다.

즉 종교에 기초한 희망이 없이 인간이 법칙을 존경하고 준수하는 일에 결코 결연하게 임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독교 교리의 역사 부분은 도덕적 신앙을 확증하고 뒷받침하고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도덕적 완전이라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에 토대를 둔 지복에 대해서도 역시 우리의 모범이며 전형이라고 말했다.

각성 신학은 말하기를, '우리의 도덕적 투쟁에서 우리가 내적으로 진실 되게 굴복해야 할 능력으로 증거 되는 한 하나님만이 계시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일은 예수님의 사죄 선포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향한 법을 지키라는 요청이 예수님의 도덕적 존엄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선상에서 율법과 복음에 대한 루터 신학이 학설은 칸트의 윤리와 결합될 수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서 새로운 토대가 잡힌다.

즉 인간이 율법에서 만나게 되는 죄책 경험으로 인해서 인간은 복음이 사죄를 선포할 때 은신처를 모색하게 된다. 종교 개혁의 교리에서는 분명히 율법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복음의 권위가 그 어떤 종류의 경험보다도 견고했다.

그런데 각성 신학에는 이것이 율법적인 면에서만 타당했다. 그런데 이 경우에 성경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칸트의 도덕철학 덕분으로, 그리고 도덕률의 권위가 이성에 토대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의 진리는 우선 율법으로 인한 경험을 해소시킬 능력을 통해서 증명된다.

이러한 각성 신학의 신앙의 토대는 톨룩을 통해서 빌헬름 헤어만과 마틴 캘러를 거쳐서 후돌프 불트만, 이른스트 푹스, 게르하르트 에벨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하나님 나라 사상에 대한 칸트의 윤리적 해석이 19세기 개신교 신학에 끼친 영향은 슐라이어마허 이후에 특별히 리카르트 로테와 일프레히트 리츨에게서 나타났는데 리츨에게서 그 정점에 달했다.

리츨Albrecht Ritschl(1822-1889)은, 하나님 나라를 사랑의 동기를 둔 행위를 통해서 인류를 조직화라는 목적을 갖추고 등장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에 리츨은 여러 관점에서 칸트의 서술을 교정했다.

첫째로, 리츨에게는 슐라이어마허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그저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토대를 놓은 역사적 장본이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의 도덕적인 나라는 칸트의 생각과 달리 이성의 도덕률이 아니라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행위'와 관련되었다.

셋째로 리츨은 기독교를 일방적으로 윤리적인 지평에서 이해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물론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는게 틀림없지만 죄인은 우선 사죄받음으로써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갖게 되고 또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촉진시키는 일과 관계되는 능력이 주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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